[장산곶매] 잔인한 4월의 기억
[장산곶매] 잔인한 4월의 기억
  • 오수정 편집국장
  • 승인 2020.04.19
  • 호수 1509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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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편집국장>


평상시와 다름없는 어느 4월의 봄날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한 날씨에 동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오전 수업 쉬는 시간에 친구가 바다에 배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놀라긴 했지만 다친 사람조차 없다니, 대수롭지 않은 이슈였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지나고 수업을 들어온 선생님의 눈이 유난히 빨개져 있었다. 그제서야 진실을 알았다. 

이는 필자가 기억하는 2014년 4월 16일이다. 아마 상당수의 국민들이 이날 세월호 뉴스를 접하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심지어는 어떤 자세로 들었는지까지도 기억할 것이다. 그만큼 국민 모두에게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잔인한 4월의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자 사건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는 듯 보였다. 오히려 희미해지다 못해 바래진 것일까.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에 지겹다는 대답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하니 이제 잊자고. 세상은 세월호를 지우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현재도 세월호 관련 기사의 댓글엔 ‘왜 다른 사건과 달리 세월호만 유난이냐’는 의견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는 예견된 인재였고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6년째 서해바다에 잠겨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생계를 벗어던지고 진상 규명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 ‘어떻게 배가 침몰했는지’, ‘왜 아이들이 제때 구조될 수 없었는지’와 같은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사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부가 사고의 직접 원인이 아니더라도 사고를 참사로 키워낸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진상규명을 시작할 때부터 정부의 미흡한 대처는 끊임없이 지적받았고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선 외압 및 은폐 논란도 있었다. 언론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력으로 희생자 수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실제 수색 작업에 투입된 인원은 잠수부 단 2명이었다. 언론 또한 진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는데 앞장선 것이다.

필자는 세월호 속에서 미국드라마 「체르노빌」 속 소련 정부의 모습을 목격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에서 발생했던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을 재구성했다. 드라마는 소련 정부가 원전 사고 폭발 초기 상황을 은폐하고 거짓말을 반복하며 체르노빌 주민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과정을 조명했다. 실제 소련은 원자로의 설계 결함을 부인했고 피해 규모를 축소해 발표했다. 체르노빌 참사의 사망자는 4천 명~9만3천여 명으로 추산되지만 소련 정부가 발표한 사망자수는 1987년부터 현재까지 31명이다. 체르노빌은 명백히 무책임한 관료주의가 낳은 참사였다.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마하일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 사고가 소련 붕괴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정부가 덮고 외면한 진실이 체르노빌 사건으로 드러나며 결국 소련을 붕괴시킨 것이다.

드라마 「체르노빌」 속 주인공은 체르노빌 속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장면에서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대한 빚이 쌓인다”고 말했다.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 그리고 진실을 덮고 외면할 때, 진실을 규명할 기회는 가려지며 이는 빚이 돼 갚아야 할 순간이 오고야 만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1986년 4월 26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그리고 이를 꼭 닮은 사건이 28년 뒤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했다. 잔인한 4월에 발생한 두 사건인지 두 사건으로 잔인한 4월이 되었는지 인과관계는 중요치 않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곪아서 터진 사고였다는 것이고 잔인한 4월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그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는 이 사건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하자는 말은 잊지 말자는 말이며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우리 모두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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