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시대는 바뀌었고 공은 누구에게로 왔는가?
[독자위원회] 시대는 바뀌었고 공은 누구에게로 왔는가?
  • 임상원<경금대 경제금융학부 18> 씨
  • 승인 2020.03.15
  • 호수 1507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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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받침대 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있었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 너희 강대한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그 옆엔 아무것도 없었네.’

이 글귀는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의 소네트 「오지만디아스」의  일부다. 만일 그 옛날 고대 이집트에도 언론이 있었다면, 그들의 역할은 파라오의 권위를 드높이고, 파라오가 만방에 퍼뜨린 말을 돌조각에 새겨 넣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빼어난 명예를 가지고, 이를 힘이 닿는 모든 곳에 보여지도록 하는 행위는 고대 파라오부터 근현대의 독재자들에게까지 비슷하게 적용돼왔던 공식 같기도 하다. 하지만 셸리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끝없는 공허함뿐이다. 붕괴된 석상의 받침대에 새겨진 오지만디아스(람세스 2세)의 이름은 장대한 세월 앞에는 어떠한 권력자도 영원할 수 없음을 증언하고, 그의 권위를 아로새긴 필경사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크롱카이트와 리영희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그만큼 진화한 언론과 더불어 사는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권력조차 거리낌 없이 비판하고, 권력과 물리적이고 심리적으로 가장 떨어져 있는 주권자에게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와 그 구성에는 허점이 존재함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특히 구전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커뮤니티 어플 속 게시글보다 한대신문과 같이 학내언론이 다루는 글은, 비슷한 의미로 그 역할이 크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제1506호의 내용 중, ‘개인정보 유출, 대책 없는 대책’ 기사가 앞서 언급한 현대 언론이 지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평가한다. 교수학습지원센터는 학생들이 많은 정보를 열람하고, 이를 정확하게 당사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제1506호에서의 내용처럼,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학생을 대표하는 비대위에서 문제를 시정하고자 학교에 요구를 했으나 흐지부지 사건이 마무리 중이라는 것이 기사의 핵심이었다.

 ‘47대 비대위의 교비 남용’에 관한 기사도 마찬가지로 역할을 튼튼히 수행했다. 문제와 가장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라도 책임을 질 당사자는 누구인지, 또 의혹은 충분히 해결됐는지 경과를 소상히 알게 된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물론 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맡을 당사자는 바로 학교의 주권자인 우리 학생들이다. 언론은 문제를 비판하며 공론의 장을 펴지만, 정작 주권자가 의기를 모으고 횃불을 들지 않는 이상, 언론은 공염불을 외는 존재로 밖엔 남지 못한다. 요즘 말로 흔히 ‘티키타카’라고 하지 않던가? 보도에 지나침이 있다면 반론을 게재하고, 호응하고 싶다면 응원의 글을 남겨도 좋을 것이다. 지난날 한 현인의 말처럼, 주권자가 주인 노릇을 하려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는 어떤 결기를 우리 스스로에게서 주문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한 인간이 불평등에 맞서 싸울 때마다, 작은 희망의 물결이 전역으로 퍼진다”라고 말한 것처럼, 주권자가 힘을 기르고 문제의 본질에 더욱 다가설 때까지, 한대신문의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자신의 역할에서 나오는 책임감과 긴장을 끝까지 지녀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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