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사랑받는 한대신문을 위해
[장산곶매] 사랑받는 한대신문을 위해
  • 오수정 편집국장
  • 승인 2019.12.31
  • 호수 1506
  • 7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양인에게 더 사랑받는 한대신문을 만들겠습니다.' 필자가 편집국장이 되며 다짐한 말이다. 기업의 광고 카피처럼 영혼 없는 문구로 보일 수 있지만 필자에게는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이다.

지난 1년간 한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가장 듣기 싫은 말은 '한대신문 누가 읽냐?'다. 이 말을 들으면 힘빠지는 기분이 들며 속상했지만 필자 또한 이 말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기자들은 학교와 학생을 위해 기사를 쓰며 고군분투 하지만 정작 신문을 읽어줄 독자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럴 때면 신문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모두 의미없는 헛수고로 느껴졌다. 그래서 기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대신문이 더 많은 학생에게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한대신문을 사랑해달라고 외치기 전에, 한대신문이 학생들에게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한대신문인지 되짚어봤다.

필자는 지난 1500호에서 '한양인에게 한대신문을 묻다'라는 기사를 작성했다. 그리고 해당 기사 작성을 위해 한대신문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었다. 설문 결과 약 10명 중 3명만이 한대신문을 읽는다고 답했다. 저조한 구독률도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 학생의 응답을 보고 충격과 동시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냥 자기들끼리 형식상 만들어서 내는 느낌" 처음엔 이 응답을 보고 혼자서 이 학생에게 반박했다. 우리는 학생들을 위한 신문을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이 대답은 필자에게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과연 학생들을 위한 신문을 만들고 있는가?

신문은 독자를 위해 존재하며 기자가 글을 쓰는 이유, 더 나은 기사를 써야 할 이유도 독자에게 있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기사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신문사 입사 시에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공감하고 읽고 싶어 하는 기사를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당시의 포부는 예상보다 고된 신문사 업무로 인해 서서히 잊혀갔다. 바쁘고 고된 신문사 일정으로 기사의 퀄리티보단 지면을 채우는 데 급급한 적도 있다. 이럴 땐 쓰기 쉬운 '적당한 기사거리'를 찾아다녔고 학생을 위한 신문을 만든다는 양심은 바쁘다는 핑계 뒤로 밀려났다. 

위의 경험이 비단 필자에게만 해당하진 않을 것이다. 이를 단순히 기자 개인의 역량으로 치부하기엔 학보사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대학언론에게 '위기'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수식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이제는 지겹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는 시대의 흐름, 매체의 한계라는 말로 대학언론의 위기를 포장해왔다. 그러나 위기의 소용돌이 중심에는 독자의 무관시밍 있다. 학생들은 대학언론에 관심을 가지지 앉으며 이는 신문사의 인력난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신문사의 인력난은 콘텐츠의 질을 떨어트리고 학생들은 더더욱 대학언론에 주목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대학 언론의 위기를 독자의 책임으로 전가할 수는 없다. 독자들에게 신문을 읽을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필자는 신문의 소비자인 독자를 배재한 채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신문을 읽어주고 사랑해주실 바랐다. 독자없는 신문은 우리끼리 형식상 신문을 발행하고 마는 '그들만의 잔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학보사가, 한대신문이 더는 손님 없는 잔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신문사의 필요성을 공감시키기 위해, 기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사랑받기 위해 기자가 먼저 학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