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부문 가작] 학생회관에 유령이 나타난대
[2019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부문 가작] 학생회관에 유령이 나타난대
  • 신유준<정책대 정책학과 16> 씨
  • 승인 2019.12.02
  • 호수 150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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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한쪽 팔이 잘려나간 새벽이었다. 온갖 선거 관련한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상자를 학생회실 입구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상자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한참 남은 투표용지가 고꾸라지듯 바닥에 깔린다.

몇 년이 되었을지 모를 소파에 몸을 던졌다. 지금 자면 얼마나 잘 수 있을까. 내일 선거함 봉인을 열기 전에 일어나야 하니 잘하면 4시간 정도. 며칠째 밤샘에 가깝게 지내다 보니 피로가 깊다. 1분이라도 더 자야 내일이 그나마 살아질 텐데. 꼭 이럴 땐 화장실이 가고 싶다. 아까 회의 들어가기 전에 마신 커피가 원망스러워진다. 핸드폰 충전기를 더듬어서 찾아 핸드폰을 꽂아두고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3시간 좀 못 자겠다 싶다. 총학생회실을 나왔다.

학생회관은 아직 캄캄하다. 학교의 중앙난방은 새벽이면 꺼지다 보니 별도로 가져다 둔 난방기구가 없는 복도는 11월에도 상당히 춥다. 아마 행정실에서 말하는 소방 무슨 수칙 말대로 자치공간 내에서 따로 난방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학생회 하면서 밤새는 사람들은 진작에 다 얼어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슬리퍼를 끌고 화장실로 걸어간다. 몇 년째 공석이라 방을 비워둔 단위들의 방들을 지나가면 화장실이 나온다. 왜 학교 화장실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손을 씻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몸을 휘감는 찬 공기에 잠이 조금 깼다. 학생회실 안에 화장실이 있다면 좋을 텐데,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걸어오던 도중 정신이 바짝 들었다. 학생회실 문 너머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학생회실 안에 누군가 있다.

"저기요, 선거기간에 학생회실 외부인 출입금지에요."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선본 사람일까. 선본 사람이면 선관위 사무실 출입은 선본 징계감인데. 내일 또 회의를 열어야 할까. 또 징계가 있으면 쟤네 선본 선거 진행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이번에도 총학생회가 당선되지 못하면 내년도 비대위가 될 테다. 그럼 내 학생회 국장직 임기도 늘어나 버리는 걸까. 그만두고 싶은데. 낮잠은 못 자는 걸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미 투표율 엎어져서 가망도 안 보이는 선거인데 이제 와서 연장선거를 남겨두고 선관위 사무실엔 왜 출입했을까. 부정행위라도 저지를 심산이었나.

항공잠바인지 비슷한 외투를 걸치고 책상 서랍 앞에 쭈그리고 있는 사람은 다시 한 번 부를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저기요, 지금 이거 징계 사안이에요. 소속이 어떻게 되세요."

그제야 의문의 사람은 뒤로 돌아봤다. 체구가 조금 왜소한 남자였다. 1, 2학년쯤 됐을까 싶은 제법 앳된 얼굴이다.

"? 장난치지 마시고요. 과는 어디세요."

한참을 나를 쳐다보던 그 사람은 입을 떼고 조그맣게 말했다.

"무기재료공학과."

나는 말을 듣고 바로 말했다.

"여기 학교에 그런 학과 없어요. 외부인이세요? 어쩐 일로 찾아오셨는지 모르겠는데, 얼른 나가주세요.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남자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를 쳐다보기만 했는데, 눈의 초점이 묘했다. 내가 아니라 내 몸뚱어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내가 입은 나이키 후드나, 머리 스타일이나 그런 것. 그제야 남자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은 배바지 위로 보이는 벨트. 동묘 구제샵에서 팔 것 같은 점퍼. 어딘가 묘하게 쾌쾌한 느낌을 준다.

"나가주세요. 얼른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며칠간 쌓여온 피로들, 쏟아지는 선거 과정에 대한 이의제기들과 생각도 못 했던 돌발상황들에서 비롯됐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하필이면 나 혼자 있는 총학생회실에 외부인 무단출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저 낯선 남성으로 인해 얼마 남지 않은 수면 가용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억울해서였을까. 그도 아니라면 낯선 남성을 앞에 둔 공포 때문이었을까, 외부인이 출입 금지된 선거기간의 총학생회실에 낯선 남성이 들어온 일을 안건으로 올리고 회의를 이어나갈 내일이 무거워서였을까. 낮은 곳부터 눈물이 차올랐다.

"이름이 뭐예요?"

나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내려보내려고 천장을 바라봤고, 선 채로 고개를 드는 자세가 뭔가 민망하여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소파에 누우며 말했다. 정적이 무서웠다.

"영현. 한영현 아니고 김영현."

영현,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흔한 이름이니 지나온 동창 이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리 친하지 않은 동기나 선배의 이름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여긴 왜 온 거에요?"

"..."

영현은 중요한 질문에는 하나도 답변하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외부인이 출입금지 시설에 들어왔으니 경찰에 전화해서 사람을 끌어내야 할까. 한 번도 경찰에 전화해본 적 없는데. 더해서 왜인지 모르겠으나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을 믿자. 경찰에 전화를 거는 것은 아무래도 심적으로 너무 번거로운 일이었다. 나는 누워서 굉장히 피곤하다는 듯 한쪽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제발 방해하지 말라는 톤으로 얘기했다.

"그냥 나가주시면 안 돼요?"

영현은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구나. 질문하러 찾아왔다니 적어도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구나. 아니, 새벽 세시가 넘는 시간에 질문하러 총학생회실을 찾아왔으니 이상한 사람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아무 목적도 없이 찾아온 사람이거나, 잘 곳을 찾아서 방랑하는 사람은 아니겠구나. 적당히 소리의 색이 바뀔 만큼 반가움을 목소리에 섞어 대답했다.

"그게 뭔데요?"

"이번 총학 후보는 택이 뭐래요?"

반가움이 달아났다. 택이라니. 옷에 붙어있는 택말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인데, 그걸 묻는 것 같지는 않다. 역시 이상한 사람이었다.

"?"

"그러니까, 어떻게 싸울 거래?"

싸운다. 단선인 총학생회가 누구랑 싸운단 말인가. 아마 단선인 지금 총학생회 후보들이 싸우는 대상이라고는 투표율밖에 없을 것이다. 유권자 50% 투표율을 넘기지 못하면 당선은커녕 투표함 열고 개표 시작조차 못 하니까. 물론 개표는 쉽게 일어나는 사건이 않는다. 재학생 절반이 돈도 안 받고 시간을 파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바보들이어야 일어나는 일 아닌가. 우리 학교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지, 몇 년째 개표를 못 하고 있다. 아마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우리 학교는 총학생회 이름이 비상대책위원회인 줄 알 수도 있겠다.

"총학생회면 투쟁 전략이 있어야 할 것 아냐."

나는 벙 쪄서 대답했다.

"요즘은 아무도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총학생회가 정치적인 발언이라도 했답시면 커뮤니티 사이트들 난리날걸요. 왜 학생회가 중립을 안 지키느냐고. 아니 정치하는 애들한테 정치적이지 말라니 웃긴 말이긴 한데, 분위기가 그렇다고요. 지금이 무슨 NL이니 CA이니 싸우던 80년대도 아니고 누가 무슨 투쟁을 해요. 다 먹고 살기 바쁘다고요. 투쟁은 무슨 정신없어 죽겠는데 하루하루 버티면서 사는 게 투쟁이죠."

"혹시 술 있어?"

아까부터 초면인데 갑자기 왜 어느 순간부터 반말이냐고 쏘아붙이려 했는데, 너무 어이가 없는 대답이 돌아오니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요. 없어요. 얼른 나가주세요.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된다니까요."

"무슨 학생회실에 술도 없어. 학생회 다 죽었네."

유치하다고 평가받는 말은 그 말이 그만큼 기초적인 본능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쓸데없는 오기를 자극하는 말이었다. 어느 학교의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이었지만 학생회가 다 죽었다는 말도, 무슨 술이 없느냐는 말도 마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말들만 골라 뱉은 것 같았다. 2019년에 다 말라비틀어진 낭만 같은 것을 산소호흡기로 달고 살아가는 학생회 사람들은 그런 말들이 자기 모양새를 닮은 것 같아 애증 하기 마련이다.

시계를 보니 눈을 붙이기는 글렀다 싶었다. 마침 총학생회실에 굴러다니던 소주 한 병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술을 한 잔 따라주기로 했다. 아마 그편이 좀 더 위험하지만 마음은 좀 더 편한 결정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역시 진화심리학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이제는 가지 않지만, 몇 해 전에 농활에서 사용하고 남은 일회용품 소주잔 한 잔을 꺼내서 영현의 앞에 두었고 술을 따라 주었다. 영현은 곧잘 한 번에 털어 마시고는 말했다.

"술이 왜 이렇게 싱거워."

어처구니가 없어서 방금의 결정을 후회했다. 지금이라도 경찰을 부르는 것이 나을까. 영현은 내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내 앞에도 잔을 한 잔 놓고 입안으로 털어 넣으면서 말했다.

"그게 자본주의 맛이에요. 요즘 소주 회사들 도수 다 낮춘대요. 그래야 많이 팔리니까."

"자본주의는 그래서 안 돼."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 뭐 소주 맛있자고 사회주의 혁명이라도 할까요."

"혁명은 시기상조야."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내요."

반말은 계속 거슬렸고, 영현은 자기 잔과 내 잔에 술을 계속 새로 따르고 있었다.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진지하지 그럼. 너는 총학생회 간부야? 어디 소속이야."

"총학생회 국장이었어요. 지금은 중선관위 위원이고요."

"아니 직책 말고 소속. 뭐 만민투나, 자민투나 그런 거. 아니면 써클 이름이라도."

무슨 말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줄임말들에 당황했다. 학생회를 지난 몇 년간 하면서 저런 단어들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공식적인 직함 이외에 따로 소속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소주 한 잔을 내 앞에 직접 따르고 마시면서 말했다.

"무슨 질문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왜 계속 반말하세요."

"내가 너보다 선배야.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이냐는거지."

나는 순간 화가 나서 마시던 잔을 털어놓고 말했다.

"저보다 선배인 건 어떻게 아세요. 저 지금 16학번이고 저는 중간에 휴학했지만 제 동기들 중엔 졸업반인 애들도 있는데. 그리고 선배면 반말해도 돼요? 지금 2019년이에요. 초면이면 나이 상관없이 존댓말 하는 게 예의라고요."

영현은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졌다. 벽에다 대고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가 하나에 사로잡혀있는 사람.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지만 느낌이 왔다.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것들을 재단할 것이라는 강한 느낌. 부모뻘 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자주 느끼던 것의 반복이다. 피곤에 절은 몸에 술기운과 싫은 감정이 빠르게 퍼져나가며 훅 올라왔다. 나는 다시 한 잔을 목 너머로 털어 넘기고 말했다.

"그런데 영현 씨 저 이름보다 제 소속을 먼저 물어보신 건 알아요? 그거 되게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것 같이 보여요. 제가 어느 입장에 속한 사람인지가 그렇게 중요해요? 자꾸 무슨 옛날 학생운동 용어 얘기하시는 거 같은데, 사람을 체스판 위에 말처럼 보는 것 같다고요."

"소속이 그 사람이야. 어떤 진영에 있는질 알아야지. 서로 위치를 잘 파악해야 이길 수 있고. 그렇게 노선 말하는 게 무섭나? 후배들은 전방입소철폐투쟁인가? 그런 거 한다고 잘 말하던데. 무슨 원시공동체문화연구회인가 하는 패도 있었던 것 같고. 요즘은 그러지도 않나 보네. 뭐 그럴 수도 있지."

영현은 씁쓸하다는 듯 한 잔을 다시 넘겼다. 나는 영현이 나를 향해 씁쓸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현의 씁쓸한 표정은 그 자체로 나를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나를 직접적으로 욕하지만 하지 않을 뿐 내 말과 행동을 자신의 이해 가능한 영역의 모서리에 세워 두고, 그것을 티내는 방식으로 나를 멸시하고 있었다.

"영현 씨 하시는 말들이 무슨 말인진 잘 모르겠는데 요즘은으로 시작하는 문장 말하면 사람들한테 꼰대소리 들어요. 그리고 무슨 소속은 소속이에요. 바쁘잖아요 다들. 어디 속하는 것도 여건 돼야 하는 거지. 알바하랴 과외하랴. 또 무슨 대외활동 같은 것도 하고. 음 그런 것도 소속이라면 소속인가. 여튼 저는 소득분위가 낮은 편이라 근장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근로장학생으로 주에 열 몇 시간 일하는데 저랑 같이 이거 하는 애 중에 저처럼 학생회나 동아리 하는 애 거의 없어요. 학점도 따야 하고."

"그런 애들이 제일 나쁜 경우야."

영현은 표정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나도 가난했지만 돈 몇 푼 벌면 세상이 바뀐다냐? 대학생씩이나 돼서 그렇지 않은걸 왜 해. 나는 돈 번다고 운동 안 하는 애들도 이해가 안 된다. , 어디 써클에 돈대려고 그러는 건가?“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다. 4년 동안 일주일에도 십수 시간씩 일하면서도 죽기 살기로 학생회까지 하며 학교에 다녔다. 알바는 생존의 문제였다. 멈추면 대학생 신분은 커녕 당장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세상이니 사회니 신경 끄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믿는다. 나는 학생회하다 학점도 말아먹었지만 내가 참 철이 없다 생각했고, 스스로 철이 없는 모습을 유지한 것 역시 내 청춘이 너무 불쌍해보이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포장하기 위한 장치였다. 학년이 차면 찰수록 11년이 아깝고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밖에 차오르지 않는데, 세상에 세상 바꾸는 얘기라니. 차갑게 식은 감정이 끓었다.

"나이도 어리신 분 같은데 진짜 꼰대 같이 말씀하시네요. 그렇게 편협하게 어떤 사람은 무조건 어떻다는 식으로... ? 요즘 사람들 누가 그래요. 그렇게 가치관 하나에 매몰되어서 꽉 막혀서 살지 않는다고요. 요즘 사람들은요...“

말을 하는 도중에 구역질 같은 것이 올라올 것 같았다. 나는 영현을 뒤로하고 급하게 학생회실 밖으로 뛰쳐나와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몇 차례 속에 든 것들을 게워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제법 얼굴에 오른 술기운을 씻어내려고 세수를 했다. 닦아내지 못한 물방울들이 얼굴에 맺혀 차갑다. 그 상태로 다시 서늘한 복도를 거쳐서 학생회실로 돌아오니 영현이 없다. 앞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이 사라지고 남은 정적은 청소노동자분들이 학생회관 1층을 청소하러 온 소리가 대신 채우고 있었다.

낮 동안 투표소를 지키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옆을 지키고 있던 선배들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깔깔대고 웃는다. 같이 선거관리위원회 일을 하는 신소재공학과의 선배 하나는 종종 학생회관에 유령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피곤한 채로 그 서늘한 곳에서 혼자 잤으니 유령을 본 것이 틀림이 없다고. 그 기분 나쁜 소파도 바꿀 때가 되었다고. 나는 장난치지 말라고 받아친 다음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어제 학생회실에서 봤던 묘한 차림의 남자는 그럼 정말 유령이었을까. 나는 학생운동에 매몰된 선배 유령과 술을 마신 셈이 되는 걸까. 그냥 꿈을 꿨던 걸까. 빽빽하게 포스터가 붙어있는 취업게시판 옆으로 정보 게시판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데리다 읽기 세미나가 진행된다는 현수막이 걸리고 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와 현수막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 학생회 선거 마지막 날이래. 투표하고 갈까?"

"나 근로 지각이야 지금. 바빠. 그리고 나도 과집 했었는데 야 그거 하면 뭐 돈이라도 준다냐? 이제 학년도 찼는데 돈도 안 주는걸 왜 해. 나는 저거 하는 애들도 이해 안 간다. 아 스펙 쌓으려고 하는 건가?"

"하긴. 이번 해도 선거함 못 까겠지? 아 맞다. 걔 소식 들었어? 아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그 텔레콤 붙은 동기 있잖아...“

나는 졸면서 되뇌었다.

학생회관에 유령이 나타난대, 유령이 나타난대, 유령이 나타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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