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문 대상] 파리의 기울어진 심장
[2019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문 대상] 파리의 기울어진 심장
  • 윤가은<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1기> 씨
  • 승인 2019.12.02
  • 호수 1505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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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모래사장의 나뭇가지를 줍고서 나의 주위로 네모난 선을 그린다 웃는 그 애를 따라 함께 웃어본다 그러면 행복해지는 것 같다 그 애는 두 손을 뻗쳐오며 장난치듯 발로 한쪽 면을 지워주지만

어린 새가
오래 전에 열린 새장으로 돌아와 잠에 들 듯이

가만히 바닷바람을 맞는다
머무는 방식 말고는 모르는 듯이

안경사는 주홍등을 켜둔 동굴에 살았다 그가 능숙한 솜씨로 매만져준 안경은 불편했다 왼쪽 코가 예전처럼 짓눌리지 않아요 안경사는 가로로 길게 찢어진 차가운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며 균형은 아주 맞다고 대답했다 주홍등에서 뽀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창백한 두 손이 내 얼굴로 뻗쳐왔다

그 애는 한밤중에 나를 찾아오는 그림자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다 자꾸만 모양을 바꾸고 뛰어다니며 나를 꼬드기는 그림자 어두워서 눈을 뗄 수 없는 그것을 몸에 꿰매기 시작했다 뚫린 구멍으로 고여 있던 숨과 피가 시원하게 흘러나간다 길게 길게 이어지는 그림자 기울어지는 몸 다급하게 감추려는 손

둥글고 울퉁불퉁한 천장을 파리가 뒤집힌 채로 걸어간다 삐뚤어진 채로 걷는 일이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안경사 몰래 안경을 찌그러뜨린다 파리의 몸이 초록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며 열기에 작은 흠집을 낸다

그 틈을 벌려
도망친다 해도

지는 해는 기다란 것들을 더욱 기울어지게 만들 것이다 하염없이 모래를 움켜쥐려고 하면서 실패를 확인하게 되겠지 그 애는 주저앉아 오랫동안 울 것이다 모르기라도 했던 것처럼 남아있는 모래에게도 새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는 나뭇가지를 줍고서 나의 주위로 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중심으로부터
초록빛이 서서히 번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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