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부문 우수상] 영화 「조커」 비평 - 조커는 농담을 던졌을 뿐이다
[2019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부문 우수상] 영화 「조커」 비평 - 조커는 농담을 던졌을 뿐이다
  • 손원길<공대 기계공학부 16> 씨
  • 승인 2019.12.02
  • 호수 1505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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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극장가에 흥미로운 두 작품이 등장했다. ‘기생충’, ‘조커전자는 칸 영화제서 황금종려상 수상 후 국내서 천만관객돌풍을 일으켰고 지금은 미국에서 한국영화 신기록을 써내려가는 중이고 후자는 베니스제 황금사자상 수상, 한국에서 DC영화 최초로 500만 관객 동원 및 R 등급영화사 최초로 박스 오피스 10억달러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현대시대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워낙 많이 나왔지만 동시에 이렇게 서로 닮은 듯 보이면서 또 다른 블랙 코미디 영화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이미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한 덕분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비평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두 영화가 관객에게 던진 메시지가 그만큼 우리 사회에 공감대를 얻어서 이지 않을까? 두 영화 모두 인상 깊었지만 본인의 시선을 더욱 이끈 건 조커의 농담(joke)이었다.

-조커의 농담은 개봉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영화 시사회 당시 미리 많은 소음이 일어날 것을 예고한 조커다. 조커의 농담을 본 많은 평론가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지만 동시에 심각한 우려도 덧붙였다. 조커가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적지 않은 평들이 올라왔다. 10년 전 똑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다크나이트(2008) 개봉당시 실제로 조커에 감명 받아 총기사건이 발생했고 다른 캐릭터와 다르게 조커에 영향 받아 범죄를 저지른 사례도 존재하기 때문에 걱정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까지 평들이 강하게 쏟아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영화로 인해 강력범죄가 유발 및 우려된다고 주장하는 이들, 정작 본질인 사회적 구조보다 애꿎은 매체한테 나무라는 것, 지켜보는 이도 절로 실소를 짓게 만든다. 과연 제작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러한 평가들을 홍보에 적절히 사용했다. 다른 영화가 영화 내 에서 강력범죄를 보여줬다고 해서 이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오직 조커만이라서 가능한 농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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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행 내내 주어지는 농담 (영화 스포일러 포함)

주인공 아서 플렉은 홀어머니를 모시는 동시에 정신질환에 걸리고 직업광대로서 살아가는 고담시의 주민이다. 아서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고민할 틈 없이 그의 감정에 이입된다. 이 장치는 영화가 영웅(Hero) 이 아닌 악당(Villain) 주인공으로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범죄 동기에 타당성을 부여하게 만든다. 게다가 주인공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점, 영화 서사 구조상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주인고의 망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점등 영화 장치로서 농담은 우리로서 명확하게 영화의 해답을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영화 제작 발표 당시 조커의 기원을 다루는 영화라고 소개되었을 때 혼돈(Chaos)을 상징하는 조커라는 캐릭터에 답을 부여한다고 많은 팬들이 우려를 나타냈지만 감독은 보기 좋게 조커만의 농담으로 대중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계속 주어지는 농담 중 하나는 아서가 언어유희를 계속 던지는 점이다. 아서가 해고될 때 간판 문구를 [Don’t forget to smile :웃는 거 잊지 마] 로 수정하거나 그의 어머니를 살해하면서 [I haven’t been happy one day out of my entire fucking life :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어

극중 어머니가 아서를 부르는 애칭은 해피(Happy)이다] 아서가 수첩에 적은 글귀 [I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than my life] 등 남들을 웃기고 코미디언이 되기를 바라던 아서가 조커로 변모해 가는 와중에서 쉼 없이 던지는 언어유희 적 농담들, 내면의 악()을 받아들이는 씬 을 보는 이는 착잡해짐과 동시에 아서 본인은 편안해지는 이러한 아이러니함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영화의 백미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서 일 때 힘들게 그리고 무겁게 올라가는 계단을 조커가 돼서 춤을 추며 내려가는 씬, 선하게 사는 것은 어렵지만 악을 한 번 받아들이면 너무나 쉽게 타락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농담을 받아들이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결코 쉬운 삶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조커의 농담에 완벽한 해답은 없다
조커의 농담이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주사위를 던졌다. 사회적 이슈, 영화의 해석, 현실과 연관성 등 각자 말()이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우리는 흥미롭게 이 판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잘 관람했다. 사람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소통하듯이 조커도 영화로서 자신만의 농담을 던진 것뿐이다. 건강한 농담이 스트레스와 긴장을 해소해주듯이 빠르게 그리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사회도 잠시 영화의 농담으로 웃은 것이 아닐까? 어떠한 농담도 그러 하듯이 정해진 답은 없다.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뿐. 30년 전 배트맨(1989) 조커가 광대 악당의 매력을 가지고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고 10년 전 다크나이트(2008) 조커가 사이코패스 악당의 정점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조커는 사회에 자신만의 농담으로 대중을 매료시켰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이번 조커의 조크(joke)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다크 나이트 조커 대사를 빌려서 ‘Why so serious?’(왜 그리 심각해?) 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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