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부문 가작] 책 「모순」 비평 - 타인의 불행에 대한 시각 및 인간의 선택
[2019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부문 가작] 책 「모순」 비평 - 타인의 불행에 대한 시각 및 인간의 선택
  • 김민서<정책대 정책학과 18> 씨
  • 승인 2019.12.02
  • 호수 1505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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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아마 중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한창 나름대로 인생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신적인 성숙에 있어서 스스로 어른과 다를 바 없다고 굳게 믿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 시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었다. 좀 더 자랐을 때, 즉 본격적으로 삶의 모순을 깨달았던 때에 와서야 책의 의미가 마음에 와닿았고 그때부터 나는 이 책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안진진
이 책의 주인공은 안진진이다. 먼저, 진진을 이해하기 위해서 설명해야 할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진진의 어머니와 이모이다. 진진의 어머니와 이모는 10분 간격으로 같은 날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자매이다. 얼굴도, 성격도, 학교 성적마저도 서로 비슷했던 이 두 사람의 인생은 결혼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진다. 온화하고 단조로운 성격의 건축가인 이모부와 결혼한 진진의 이모는 진진의 말에 의하면 우아하고 소녀같은 모습으로, 세상 모든 행복을 차지하는 삶을 살게 되었고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며 걸핏하면 집을 나가는 아버지와 결혼한 진진의 어머니는 억척스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 모든 불행을 소유하는 삶을 살게 된다. 어머니의 이 불행은 진진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진진의 독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만 삶에 대한 다른 호기심까지도 다 거두어버렸다.

이는 진진에게 닥친 첫 번째 모순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잔혹하게 느껴졌을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진진은 냉소적인 성격으로 자란다.

그 이후로도 진진의 인생은 수많은 모순점들의 연속이다. 냉소적인 어른으로 자라나 사랑을 모르는 스물다섯 살의 진진에게는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한 사람은 김장우라는 남자로 희미한 것을 사랑하며 감상적이고 우유부단하며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른 한 사람은 나영규라는 남자로 특별한 흠은 없지만 단조롭고 계산적이다. 진진은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자신이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두 사람 모두가 진진에게 청혼을 하고 진진은 자신이 사랑하게 된 김장우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나영규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진진에게 이모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는 진진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사건의 서막이다. 이모의 편지에는 자신이 생을 끝내기로 했다는 결심과 함께 자신의 시신을 수습해달라는 부탁이 담겨 있다.

진진아, , 이제 끝내려고 해... 그 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이모의 편지에는 자신이 줄곧 엄마의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부러워했다고 적혀있다. 이모는 자신에게 결핍이 없다는 것이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더는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진진은 처음에는 이모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퍼하지만 결국 이모의 삶을 이해하며 그 죽음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진진이 일전에 청혼을 거절했었던 나영규와 결혼하는 것이 이 책의 결말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점이다. 나는 그러한 의도의 틀 안에서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이 책을 읽었다. 하나는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선택과 실존이다.

타인의 불행
엄마의 불행과 이모의 불행은 궤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엄마의 불행은 객관적이고 강렬하다. 누구든 동정하고 전율할 만한, 현실적인 불행이다. 따라서 엄마는 거리낌 없이 타인의 불행을 재단하고 그에게는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논할 자격이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엄마의 공격성이나 편협함은 그 인생의 비참함에서 비롯된 동정심으로 인해 희석된다. 반면 이모의 불행은 주관적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특히 엄마의 입장에서 이모의 불행은 가진 자의 허영, 투정과 같은 가벼운 종류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모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자신의 불행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며 스스로도 이 사실을 자조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실에도 이 책의 엄마와 이모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불행에 견주는 것을 싫어하지만 자주 타인의 불행을 재단하고 그것을 아주 가볍거나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실로 모순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따라서 타인의 불행과 고통, 자신의 불행과 고통은 상당한 간극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겪은 것, 그로 인해 형성된 가치관으로 외부세계를 판단한다. 공감이라는 것도 결국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진진의 엄마는 자매로서 이모를 사랑했지만 그 불행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를 이유로 그녀를 비난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진진의 이모 또한 진진의 엄마를 동정하고 사랑했지만 그 불행에 진정으로 공감하지는 못했다. 술을 마시고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아버지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모를 불러 아이들을 데려가도록 부탁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부탁으로 조카들을 데려가기 위해 매번 속도 위반, 신호 위반까지 하며 차를 달렸던 이모. 어른이 되어 이모에게 그때 일을 기억하느냐고 묻는 진진에게 이모는 그때 삐뽀삐뽀 소리가 나는 구급등을 얹어 놓고 달려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말을 하며 진진에게 그때의 일들을 그냥 잊어버리라며, 아니면 자신처럼 무료한 인생 속에서 긴박함을 느낄 수 있었던 재미있는 모험담 정도로만 생각하라고 말한다. 진진의 어머니에게는 수치스러운 기억이 이모에게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결국, 이모는 엄마의 공격적인 방식과는 다른 이러한 방식으로 타인의 인생과 불행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다.

선택과 실존
나는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 어쩌면 두 쌍둥이 자매, 어머니와 이모일 수도 있다고 본다. 작가는 행복과 불행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그리기 위한 목적으로 심리학이나 생물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쌍둥이 실험이라는 장치를 사용했다.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인 두 사람의 설정이 이를 말해준다. 두 사람은 단순한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 부모도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성격이나 외모, 성취도 등이 동일했으며 심지어는 결혼식 날짜마저 동일하다. 결혼이라는 하나의 변수 외의 다른 조건을 완벽하게 통제함으로써 실험의 정확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즉 이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작가의 사고실험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의 대상자들, 즉 어머니와 이모를 주인공으로 놓고 전개했다면 진부한 사고실험의 결과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이 이 이야기를 이 자매들 중 불행하다고 여겨지는 쪽의 딸인 진진이 풀어나가게 함으로써 작가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이 실험의 결과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진진의 선택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준다.

누가 보기에도 불행했지만 그 불행이 오히려 삶을 이어가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던 엄마의 삶. 행복의 모든 조건을 갖춘 것처럼 보였으나 그 평탄함에 질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모. 각각 엄마의 삶과 이모의 삶에 대응되는 진진의 두 남자, 김장우와 나영규.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진진은 나영규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이모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이모의 삶은 자살로 마감됨으로써 이미 실패가 증명된 삶이다. 이를 알면서도 진진은 이모의 삶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진진의 삶 또한 실패가 예정된 것일까? 즉 진진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진진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스로 그 질문에 대답한다.

나는 나에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해 조건 하나의 차이로 의해 극명하게 다른 삶을 사는 엄마와 이모, 그리고 비참하고 불행한 쪽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잔혹한 모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진진은 결국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의 삶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진진은 이러한 모순, 즉 자신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삶에 대한 냉소와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초반부의 진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성숙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을 안진진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여지도 있을 것이다.

엄마, 이모, 안진진.

이 세 사람의 선택과 인생은 모순적이다.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삶이 모순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선택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엄마, 이모, 진진은 선택하고 선택당하며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셋의 선택과 인생은 모두 다르지만, 모순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우리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선택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 개념과도 연관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자유와 선택에 관하여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자유와 선택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만들어 간다.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에서 인간의 원래 모습이란 없다. 각자는 무엇이 올바르고 바람직한지를 홀로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불안은 피하지 못할 우리의 운명이다.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알 수 없을뿐더러, 책임도 오롯이 우리에게 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불안은 이 책의 끝부분에서 진진이 말했던 모순에 대응할 수 있다. 개인은 결과를 알지 못한 채로 선택하고 그 선택이 그 개인을 구성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구성한다. 진진이 자신의 선택을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모순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는 불안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처럼 인간의 선택과 불안도 마찬가지의 관계를 지닌다. , 모순은 인간의 자유, 실존에 따르는 책임이기에 이들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진이 말한 것과 같이 우리의 삶, 즉 개인의 삶은 그 모순을 통해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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