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시대는 흘러서 그릇에 담긴다
[아고라] 시대는 흘러서 그릇에 담긴다
  • 이예종<대학보도부> 정기자
  • 승인 2019.11.24
  • 호수 1504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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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종<대학보도부> 정기자

요리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끔 재미만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순간, 요리 프로그램은 종종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고 짚어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SBS 예능 「골목식당」의 흥행은 경제 저성장 시기에 들어선 자영업 불황과 연결된다.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80만 명가량의 자영업자가 폐업해왔다. 그중에서도 외식업의 상황은 참담하다. 지난 2016년을 기준으로 외식업 폐업률은 23.8%를 기록했는데, 10%대의 도·소매업 폐업률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실정이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해 외식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만들어진 「골목식당」은 곧 방영 2주년을 맞이한다.

위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백종원<더본코리아> 대표는 2015년에 방영된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tvN 예능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를 간단하고 친근하게 설명해주며 ‘백 주부’라는 별칭과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작금의 요리 프로그램은 대중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요리는 어렵고 전문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쟁’과 ‘생존’을 보여주곤 했다. 정신없이 시끄러운 호통이 울리는 곳에서, 음식은 팬 위를 쉴새 없이 춤추고 뛰어다닌다. 아수라장 같은 주방에서 귀를 때리는 불협화음을 통제하는 사람은 바로 ‘셰프’다. 그의 눈을 거친 음식은 제시간에, 제 온도에, 손님들의 테이블이 모여있는 ‘홀’의 제자리로 옮겨지고, 까다로운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2010년 드라마 「파스타」에서 보여진 요리는 이렇게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로, 어려운 것이라는 이미지로 그려졌다. 요리의 어려움과 전문성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반영됐다. 2012년, Olive에서 방영된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선 재능 있는 요리사들이 등장해 전문 심사위원을 만족시키고, 합격의 상징인 ‘앞치마’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표현됐다.

그러던 중 ‘솔로 이코노미’와 ‘힐링’이 사회 트렌드로 급부상했고, 요리는 또 시대를 담았다. 요리는 경쟁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N포세대를 위로하는 모습으로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 tvN의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에선 이혼을 비롯해 어떤 이유에서든 1인 가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먹방’으로 기깔나게 보여줬다. 2015년의 SBS 드라마 「심야식당」 역시 심야에만 문을 여는 식당 주인이 고된 삶을 사는 주인공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그림이 요리와 적절하게 어우려졌다. 요리가 사람을 위로하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선, 기존의 전문적이고 어려운 모습에서 탈피해야 했다. JTBC의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와 같은 프로그램은 이 역할을 잘 수행했다. 전문적 지식과 능력은 물론 예능감까지 겸비한 ‘셰프테이너’들은 요리를 친숙한 이미지로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시대는 흘러서 그릇에 담긴다. 요리 프로그램 속에 전시되는 그릇과 그 안의 음식들은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급하게 삼키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시대의 풍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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