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 '불법촬영' 범죄 판결에 신중을 기하길
[사설] 법원, '불법촬영' 범죄 판결에 신중을 기하길
  • 한대신문
  • 승인 2019.11.24
  • 호수 1504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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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의정부지방법원(이하 의정부지법)은 성폭력범죄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A씨는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했다. 1심은 이를 성폭력이라 판단했으나, 항소심에서 의정부지법은 레깅스가 일상복이며 촬영된 부위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판결을 뒤집었다. 

불법촬영은 타인의 신체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몰래 촬영하는 행위다. 의정부지법은 불법촬영 대상이 되는 옷과 그렇지 않은 옷을 구별하면서 피해자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자신의 하반신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촬영된 것에 관해 A씨에게 불쾌감을 호소했다. 하지만 의정부지법은 이 사실을 무시한 채 불법촬영 여부를 판단했다. 불법촬영의 조건을 옷차림만으로 좁게 해석해 ‘일상복은 몰래 촬영해도 된다’는 인식을 생산하고 잠재적인 불법촬영에 면죄부를 제공한 셈이다.

또한 의정부지법은 촬영된 신체 부위가 통상적으로 노출되는 부위기 때문에 A씨의 촬영 행위가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씨가 피해자의 하반신을 무려 8초씩이나 촬영했다는 점에서 사회통념상 피해자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봤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상화된 피해자가 호소한 성적 수치심 역시 의정부지법이 축소해 해석할 수 없는 중대한 요소였다. 그러나 의정부지법은 신체의 자유 침해에 대한 사회 일반의 법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수치심도 간과한 채 판결했다.

의정부지법의 행태가 더 지탄받은 이유는 판결문에 피해 사진을 첨부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한겨레가 입수한 판결문 원문에 따르면, 의정부지법은 A씨가 몰래 촬영한 사진을 이용해 판결 근거를 설명하고 있다. 검찰이 피해자의 신체가 무단으로 촬영된 영상을 A씨가 갖고 있는 걸 문제 삼아 제기한 소송에 의정부지법은 도리어 이 영상을 공적 기록물에 남겨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줬다. 이 판결문은 A씨에게 송부됐을 뿐 아니라 다른 판사 역시 내부 시스템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의정부지법은 피해자 동의 없이 촬영된 사진을 사용하면서 재판 당사자의 인격권 보호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이는 향후 불법촬영 피해자가 자신의 사진이 공적 기록물에 남게 될 것을 우려해, 불법촬영 관련 소의 제기에 소극적이게 할 수 있다.

지난달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불법촬영 건수는 △2016년 4천449건 △2017년 5천437건 △2018년 5천497건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불법촬영 공포가 나날이 높아지는 가운데, 의정부지법은 피해자의 자격을 좁혀 도리어 불법촬영을 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꼴이 됐다. 게다가 의정부지법은 피해 사진을 판결문에 적시하면서 피해자의 인격권 침해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법원은 판결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권을 존중하고 부차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디 신중을 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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