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한, ‘최소의 건축’으로 디자인하다
정영한, ‘최소의 건축’으로 디자인하다
  • 노승희 기자
  • 승인 2019.11.04
  • 호수 150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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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한<정영한 아키텍츠> 소장

정영한<정영한 아키텍츠> 소장은 우리 학교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축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는 △라이트 컨테이너 △물 위의 방 △9X9 실험 주택  등의 작품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며 한국 건축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사용자를 위한 집을 짓기 위해 ‘최소의 건축’을 지향하는 정 소장만의 건축 철학에 대해 들어보자.  

‘건축가’를 향한 길
정 소장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미술대전에서 수상 할 정도로 미술에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는 대상을 관찰하고, 정해진 캔버스 규격의 틀을 깨는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는 “상상하며 그림 그리는 건 결국 어떤 장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선을 그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라며 화가가 아닌 건축가로 꿈을 바꾼 이유를 이야기했다.

건축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정 소장은 본교 대학원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만난 인연은 정 소장이 더 나은 건축의 길을 걷게 해줬다. “대학원에서 도미 마사노리 교수님을 만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더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제가 가진 가능성을 이끌어 내주셨어요. 졸업 후에도 제가 진행하는 작업 현장에 오셔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지금도 계속 연락을 이어가고 있어요.”

대학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 소장은 2002년 다소 젊은 나이에 ‘아키홀릭’이라는 소규모 건축 연구소를 설립했다. 정식 시스템을 갖춘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는 디자인 기획, 설계, 공사 관리까지의 전 과정을 겪어보며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키홀릭은 현재 ‘정영한 아키텍츠’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의 연구소는 획일화된 도시 틈에서 새로운 주거 유형을 탐색하며 창의적인 설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영한 아키텍츠는 대중과 건축 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집에 대한 젊은 건축가들의 시선을 모으고 ‘최소’라는 가치의 다양한 정의를 모색하고 있어요.”

그만의 건축 철학
정 소장은 사용자가 거주 공간을 스스로 정의하도록 만드는 건축을 강조한다. 그는 가구의 수납을 가능하도록 설계해 사용자가 필요할 때 꺼내 쓰며 자유로운 공간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사용자들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건물에서 건축가의 개입이 없다는 느낌을 받길 원해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를 위해선 건축가의 치밀한 개입이 필요하죠.” 건축가 개입 최소화라는 의미의 ‘최소의 건축’은 그가 말하는 진정한 건축이다.
 

▲ 정 소장의 첫 건축 프로젝트인 라이트 컨테이너는 가벽이 거주 공간을 둘러싸 빛을 차단하는 형태다. 빛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 미국에서 주최하는 2018, The Architecture Masterprize의 주거부분에서 수상한 물 위의 방 작품은 수영장과 주거 공간을 분리시키지 않는 독특한 설계방식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정 소장은 건축의 완결을 물리적인 준공이 아닌 사용자가 공간과 친숙해지는 시간까지로 본다. “사람들끼리 처음 만났을 때도 친교의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공간과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해요”라며 건축에 대한 그만의 철학을 들려줬다. 그는 실용성과 미학 중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오히려 그 두 가지 가치가 긴장감을 갖고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설계의 영감을 어떻게 얻는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 “교회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이미 설계된 교회 사진을 보진 않아요. 교회라는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계해야 할지를 고민하죠.” 정 소장은 공간에 대한 해석과 설계의 과정에 직관이 반영되기도 하는데, 그런 직관에 의한 판단도 책이나 영화, 여행 등 경험에서 얻은 자양분이 농축된 결과라고 말한다. “설계의 형태나 공간의 컨셉은 평소 경험에 의해 쌓인 것이 많아야 자신만의 독창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더 나은 건축을 향해
그는 2013년부터 ‘최소의 집’이라는 장기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최소의 집’ 기획전은 현재 주거문화의 한계를 되짚어 보고 개개인의 삶의 방식에 맞는 적정 공간은 무엇인지, 삶의 변화에 따라 집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대중과 함께 고민하는 전시다. 매회 3인의 건축가가 각각 ‘최소’의 의미를 정의해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전시는 정 소장의 건축 철학에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 기획전은 현재까지 아홉 번의 전시를 마쳤고 열 번째 전시를 준비 중이다. 그는 “열 번째 전시가 끝난 이후 동시대에 활동하는 외국 건축가들과 함께 동일한 주제의 전시를 계획하고 있어요”라며 세계와 소통하려는 모습도 보여준다. 건축 이외의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경험하고자 하는 정 소장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라는 다른 포부도 밝혔다.

미래의 건축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정 소장은 평소 다양한 경험을 통해 끝없는 상상력을 가지라고 말한다. 사용자를 위한 집을 짓기 위해 끝없는 고민을 하는 정 소장이 우리에게 보여줄 다양하고 색다른 건축물과 빛나는 건축의 미래를 기대해보자.

정 소장은 본인을 건축 중독자라고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하며 건축을 위한 영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건축 중독자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정 소장은 본인을 건축 중독자라고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하며 건축을 위한 영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건축 중독자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신선아 수습기자 shinsa211@hanyang.ac.kr
사진 출처: <정영한 아키텍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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