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 못 잡는 주 52시간 근무제
갈피 못 잡는 주 52시간 근무제
  • 오수정 기자
  • 승인 2019.11.04
  • 호수 1503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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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가 정답일까

주 52시간 근무제(이하 주 52시간제)가 300인 이상 사업장에 도입된 지 약 16개월이 지났다. 지난달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영향으로 올해 3분기까지 주당 36~44시간 취업자가 올해 2분기 대비 월평균 약 72만여 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전체 취업자 중 36~44시간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44%까지 커졌다. 3년 전만 해도 해당 비중은 39%대 였다. 같은 기간 17시간 이하 취업자도 월평균 28만1천명 늘어 근로시간별 취업자 분포가 전반적으로 낮은 시간대로 이동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주 52시간제 시행은 빠르게 우리의 근로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주 52시간제의 출발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지난 2017년 기준 2천24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이런 장시간 근로 관행을 해결하고자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1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기존 최대 68시간까지 가능했던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 40시간과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합해 52시간을 넘지 않게 한 것이다. 주 52시간제는 지난해 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됐으며 지난 7월부터는 300인 이상 특례업종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2020년과 2021년까지 각각 50~299인 사업장과 5~49인 사업장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주 52시간제로 인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뒤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성과가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의 ‘2019년 2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는 상용근로자의 1인당 월평균 근로시간은 180.2시간으로 지난해 2월 대비 1.7시간(-0.9%)이 줄었고, 임시·일용근로자는 103.2시간으로 지난해 2월 대비 2.9시간(-3.6%) 감소했다. 

근로자 또한 주 52시간제에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7월 발표한 설문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삶의 질이 늘었냐는 물음에 조금 좋아졌다는 응답이 66%, 매우 좋아진 편이라는 응답이 18%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인 이원준<서울시 마포구 27> 씨는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퇴근 후 여유시간 확보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규칙적인 취미활동 시간이 보장돼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성급한 주 52시간제 도입의 문제
반면 주 52시간제 시행에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도 함께 줄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초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진행한 주 52시간 적용 직장인 65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18.1%가 ‘수입 감소’ 문제가 발생했다고 답했다. 지난 7월 300인 이상 특례업종에 주 52시간제가 확대 도입되면서 임금 삭감을 우려한 경기 지역 버스 노조는 1일 2교대 제도를 도입해달라는 주장과 함께 줄어드는 근로 일수에 따라 시급을 7% 인상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김태기<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근로자들은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임금을 받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진정한 근로시간 단축은 이전과 동일한 소득을 보장 받을 때 실현할 수 있다”며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한 만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계 또한 주 52시간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중소기업 500개를 대상으로 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조사’에 따르면 58.4%가 ‘근로시간 단축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중 ‘준비할 여건이 안 된다’고 답한 기업도 7.4%였다. 주 52시간제 시행에 앞서 개선해야 할 제도에 관한 물음에는 탄력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및 요건 개선이 69.7%로 가장 많았다. 최충<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은 처우나 근로환경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생산 차질 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의 고충을 설명했다. 

탄력근로제 기간을 둘러싼 온도 차
이에 중소기업계는 주 52시간제 실시를 1년 이상 유예하고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단위 기간 중 일이 많은 주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의 근로시간을 줄여 단위 기간 내 평균 근로시간을 최대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제도다. 

경영계는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중소기업의 경우 추가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데다 산업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까지로 연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계절에 따라 일감이 몰리는 공장이나 집중적으로 연구 및 개발이 필요한 연구소 등에서는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해 산업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고 전했다.

반면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면 주 52시간제 도입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면 정부가 내세운 ‘탈 과로 사회’가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탄력근로제가 도입되면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을 넘겨서 최대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즉,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릴 경우, 근로자는 12주 연속 평균 60시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한국의 노조 가입률은 약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용주가 임의로 근로시간을 늘려도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이에 대응하기 어렵다. 이남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확대되면 주 52시간제의 근로시간 단축 취지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소장은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영세 사업장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이 가장 필요한 곳이지만 탄력근로제로 근로시간을 늘리게 되면 불법적인 행태를 합법화하는 셈”이라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소장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있어 노동조합 조직률을 끌어올리고 고용주가 탄력근로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행정 단속을 강화하는 체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려 하는 것은 근로시간 단축 효과를 오히려 축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 52시간제가 한국 사회에 연착륙 할 수 있도록 정부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움: 김태기<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이남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최충<경상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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